나의 해방일지
집에서 서울 직장까지 지하철 스물아홉 정거장, 편도 약 2시간에 가까운 거리,
서울이 계란 노른자라면 흰자와 노란자 사이 경계선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산포시,
세상이 두려워 언제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주인공 염미정과 가족들의 이야기다.
조이카드 디자인실 3팀의 계약직 디자이너 염미정
빨간펜 사이코 팀장에게 제출한 디자인마다 빨간펜으로 온천지 찍! 찍! 찍!
남들 퇴근하는 퇴근길...
커피숍에서 커피 한잔 여유로 포장하고 싶지만,
실은, 오후에 팀장이 무지막지하게 그어 놓은 빨간 펜을 따라 오늘도 잔업을 한다.
커피숍에서 사랑받는 소중한 여자인척 연기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하는 길에 언제나 그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내게 도와주는 건 교회에 붙은 커다란 현수막의 글귀...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술집 호스트에서 마담을 거쳐 사장까지 빠르게 오르며
세상 무서운 것 없는, 모든 것을 가져 보았던 구씨
서울에서 대형 클럽들을 운영했지만 조직의 배신으로 목숨만 건지게 되고
이들이 지내는 산포시에서 세상과의 연을 모두 끊고 술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버틴다.
구씨를 무서워하지 않는 단 한 명인 염미정
미정은 인생을 너무나 하찮게 보내고만 있는 구씨에게 말한다.
날 추앙해요!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들...
그리고 그들을 옭아매는 세상의 따가운 시선들...
그들은 세상이 만들어 낸 굴레와 속박에서 해방을 원한다.
기억에 남는 장면
- 1회 -
서울에 살았으면 우리 달랐어?
연기하는 거예요.
사랑받는 여자인척, 부족한 게 하나 없는 여자인척
난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의 지지를 받고
그래서 편안한 상태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난 벌써 당신과 행복한 그 시간을 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어요.
당신 없이 있던 시절에 지치고 힘들었던 것보단
당신을 생각하면서 힘을 냈다는 게 더 기특하지 않나요?
- 2회 -
초등학교 1학년 때 20점을 받은 점이 있었어요.
시험지에 부모님 사인을 받아가야 했는데 꺼내진 못하고
시험지가 든 가방만 보면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웠어요.
사인은 받아야는데, 보여주면 안 되는...
해결은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는...
지금 상황에서 왜 그게 생각이 날까요?
...
도대체 뭐가 숨겨야 되는 20점짜리 시험지인지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20점짜리인 건지...
지쳤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모르겠는데 그냥 지쳤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에요
눈 뜨고 모든 시간이 노동이에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고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돼요.
난 한 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 3회 -
한 번도 채워진 적 없고 거지 같은 인생에 거지 같은 인간들
다들 잘난 척...
아무렇게나 쏟아내는 말... 말...
어르고 달래도 뭐 안되면 뭐? 그럼 별수 있어?
끝내자는데 끝낼 수밖에
그럼 그때부터 죽어라 싸우는 거야
내가 영화를 혼자 봐서 헤어지는 걸로 만들고
걔가 새벽에 딴 놈이랑 톡 해서 헤어진 걸로 만들어야 해!
절대로 내가 별 볼일 없는 인간인 거 그게 들통나서 헤어지는 게 아니라!
나도 알아 걔가 질 수 있는 패 중에 내가 최고의 패는 아니라는 걸
더 좋은 패가 있겠다 싶겠지... 나도 알아...
생각해보면 내 인생의 개새끼들도 시작점은 다 그런 눈빛
넌 부족해!라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눈빛
별 볼일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은, 하찮은 인간이 된 것 같은 느낌
우리를 지치고 병들게 했던 건 다 그런 눈빛들이었다.
자신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자 달려들었다가
자신의 볼품없음만 확인하고 돌아서는 반복적인 관계
어디서 답을 찾아야 될까?
해방클럽!
전 해방이 하고 싶어요. 해방되고 싶어요.
어디에 갇혔는진 모르겠는데 꼭 갇힌 것 같아요.
속 시원한 게 하나도 없어요.
갑갑하고 답답하고, 뚫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 4회 -
이상하게 마주 보고 앉는 게 불편하더라고
사람을 정면으로 대하는 게 뭔가 전투적인 느낌이야
공백 없이 말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사람들은 천둥번개가 치면 무서워하는데
전 이상하게 차분해져요. 드디어 세상이 끝나는구나 바라는 바다
갇힌 것 같은데 어딜 어떻게 뚫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다 같이 끝나길 바라는 것 같아요.
불행하진 않지만 행복하지도 않다.
이대로 끝나도 상관없다.
다 무덤으로 가는 길인데
뭐 그렇게 신나고 좋을까...
어쩔 땐 아무렇지 않게 잘 사는 사람들보다
망가진 사람들이 훨씬 더 정직한 사람들이지 않을까? 그래요.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나도 다른 사람 되어 있는 거...
확실해.
추앙은 어떻게 하는 건데?
응원하는 거...
넌 뭐든 할 수 있다. 모든 된다. 응원하는 거...
- 5회 -
확실해? 봄이 오면 다른 사람 되어 있는 거?
추앙하다 보면 다른 사람 되어 있을 거라며?
한 번도 안해봤을거 아니에요.
난 한번도 안 해봤던걸 하고 나면 그 전하곤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던데...
끌어야 되는 유모차 있고 보내야 되는 유치원 있는 그런 여자라는 건데
적어도 내가 괜찮다 생각하는 여자는 그 정도 욕심은 내도 되는 여잔 건데
근데 난 그걸 해줄 수 없는 남자란 거....
그게 나의 딜레마야.
이 딜레마를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여자를 만나니까 계속 헤어지는 거야.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람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내가 좋아하는 것 같은 사람들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불편한 구석이 있어요.
실망스러웠던 것도 있고, 미운 것도 있고, 질투하는 것도 있고, 조금씩 다 앙금이 있어요.
사람들하고 수더분하게 잘 지내는 것 같지만 실제론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혹시 그게.. 내가 점점 조용히 지쳐가는 이유 아닐까?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고, 버려진 느낌에 시달리는 이유 아닐까?
한번 만들어 보려고요. 그런 사람.
상대방이 이랬다 저랬다 하는 거에 나도 이랬다 저랬다하지 않고,
그냥 쭉 좋아해 보려고요.
방향 없이 사람을 상대하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을까?
이젠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요.
- 6회 -
누구랑 있으면 좀 나아 보일까? 누구랑 짝이 되면...
그렇게 고르고 골라놓고도 그 사람을 전적으로 응원하진 않아...
나보단 잘나아되는데, 아주 잘나진 말아야 돼...
전적으로 준 적도 없고 전적으로 받은 적도 없고
다신 그런 짓 안 해
잘 돼서 날아갈 것 같으면 기쁘게 날려 보내 줄 거야
바닥을 긴다고 해도 쪽팔려하지 않을 거야
세상 사람들이 다 손가락질해도 인간 대 인간으로 응원만 할 거야.
싫을 때는 눈앞에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싫어
눈앞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말하면 더 싫고
쓸데없는 말인데 들어줘야 하고, 나도 쓸데없는 말해 내야 하고
무슨 말 해야 되나... 생각해내야 하는 그 자체가 중노동이야..
- 7회 -
내가 심장이 막 뛸 땐 다 안 좋을 때던데,
당황했을 때 화났을 때 100m 달리기 하기 전 다 안 좋을 때야
한 번도 좋아서 심장이 뛴 적이 없어.
정말 좋다 싶을 땐 반대로 심장이 느리게 가는 것 같던데 뭔가 풀려난 것 같고
처음으로 심장이 긴장을 안 한다는 느낌?
넌 이런 등신 같은 날 추앙해서...
자뻑에 빠질 정도로 자신감 만땅 충전돼서...
그놈한테 눈 하나 깜빡 안 하고 야무지게 할 말 다 할 수 있게...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놓으라고...
누가 알까 조마조마하지 않고... 다 까발려 저도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게...
날 추앙하라고...
- 8회 -
거칠고 투명해...
투명은 무슨... 너도 미쳤구나?
너 지금 너 추앙하냐?
응...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세 살 때, 일곱 살 때, 열아홉 살 때,
어린 시절의 당신 옆에 가 앉아서 가만히 같이 있어주고 싶다...
있어주네 지금...
내 나이 아흔이면...
지금이 어린 시절이야...
- 10회 -
인생이 그래...
좋다 싶으면 갑자기 뒤통수 후려치고..
뭐 마냥 좋을 줄 알았냐?
...
추앙이 뭐냐? 난 몰라...
어금니 꽉 깨물고 고통을 견디는 건 있어 보이고
여자랑 알콩달콩 즐겁게 사는 건 시시한가 보지?
뭐가 더 힘든 건데?
이름이 뭐든 세상 사람이 다 욕하는 범죄자여도 외계인이어도 상관없다고 했잖아.
그러데 그게 뭐? 난 아직도 당신이 괜찮아요.
그러니까 더 가요.. 더 가봐요...
- 11회 -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
91년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고 50년 후면 존재하지 않을 건데
이전에도 존재했고 이후에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
내가 영원할 것 같은 느낌
그런 느낌에 시달리면서도
마음이 어디 한 군데도 한 번도 안착한 적이 없어
이불속에서도 불안하고
사람들 속에서도 불안하고
난 왜 딴 애들처럼 해맑게 웃지 못할까?
난 왜 늘 슬플까?
왜 늘 가슴이 뛸까?
왜 다 재미없을까?
...
인간은 다 허수아비 같아
자기가 진짜 뭔지 모르면서 연기하며 사는 허수아비
어떻게 보면 건강하게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런 모든 질문을 잠재워두기로 합의한 사람들일 수도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어떤 거짓말에 합의한 사람들
난 합의 안 해 죽어서 가는 천국 따위 필요 없어
살아서 천국을 볼 거야.
근데요. 애타는 게 좋은 거예요?
왜 좋아요? 애가 타는데?
익는 것도 아니고 타는데? 마음이 막?
그거 안 좋은 거잖아요. 불편한 거잖아요.
남녀가 사귀는데 뭔가 가득 충만하게 채워져야지
줄듯 말 듯 찔끔찔끔 그게 뭐야?
밥도 그렇게 주면 살인나요.
근데 왜 애정을 그렇게 얄밉게 줘야 해요?
간질간질한 게 뭐가 좋아? 시원하게 팍팍 긁어줘야 좋지
애타고 간질간질하고 그거 다 불쾌 아닌가요? 유쾌가 아니라...
머리 밀지 마세요.
제가 할게요. 아무나!
내가 사람들 틈에서 오버하고 있었나 봐
혼자 있으니까 되게 차분하고 다정해져
- 12회 -
해방클럽 3가지 강령
1.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2.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3. 정직하게 보겠다.
- 13회 -
엉뚱한 곳에 나를 던져 놓으면
아주 잠깐 어떤 틈새가 보여요
아.. 내 머릿속에 이런 게 있었구나...
- 14회 -
보고 싶었다. 무진장!
말하고 나니까 진짜 같다. 진짜 무지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주물러 터트려서 그냥 한 입에 먹어버리고 싶었다.
나 이제 추앙 잘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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