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를 졸업하기 전, 대학원 진학을 잠깐 고민했습니다. 부모님과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님들과 상담을 했습니다. 모두들 질문을 합니다. "대학원은 왜 가려고?"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단지 마음만이 계속 끌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입사하고 생각보다 업무 강도가 높지 않아서 미련이 남았는지 덜컥 산학대학원을 등록합니다. 산학대학원은 직장인을 대상으로 저녁에 강의가 진행되는 대학원 코스입니다. 산학대학원을 통해 석사학위를 받고, 그로부터 10년 후 박사학위를 도전합니다. 박사학위 취득까지,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 생활을 하며 느낀 점 들이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개인적 경험을 통해 정리한 내용이기 때문에 잘못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
대학과 대학원
대학과 대학원에서 배우는 커리큘럼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행정적 차이는 취득 학점과 졸업기준 정도? 학문적 추구하는 방향에 대한 차이는, 학사는 학문에 대한 이해와 활용의 수준이라면, 박사로 가면 갈수록 이해를 넘어 현재의 문제점과 제약 사항을 찾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방법을 수련합니다.
학문을 탐구하는 목표의 차이 때문인지, 대학원에서는 30% 정도는 교수님께서 학기 초에 관련된 지식에 대해 빠르게 가이드 해주시고, 이후부터는 최신 연구논문에 대한 세미나를 많이 진행합니다. 대학원의 과정 자체가 현재의 상황을 빨리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 개선 가능함을 논리적으로 증명하여 학술적 기여를 하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석사과정의 졸업 기준은 이러한 학술적 기여도가 그리 높지는 않아서 본인의 계획대로 마칠 수 있지만, 박사학위는 학술적 기여도가 석사보다 약 3~4배 정도 높다고 느꼈습니다. 국내가 아닌 해외저널이나 학회를 통해 기여도를 인정받는 작업도 있지만, 학위 수여에 대해 심사관으로 참석하시는 교수님들 또한 객관적 입장으로 본인들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하기에 좀 더 높은 벽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석사학위
저는 석사를 산학대학원으로 다녀서 연구실 생활을 정통으로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사 과정에 있는 동안 석사과정 학생들을 보면 참 많은 업무들을 합니다. 연구실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행정 업무들도 많이 하고, 박사과정 학생들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를 작게는 1~2개, 많으면 3~4개 정도 참여하며, 선배들의 지도하에 소규모 연구들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연구실 세미나를 통해 연구결과를 공유하고 새로운 논문을 리뷰하고 발표하기도 합니다.
석사과정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연구실이 운영되고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 몸소 체감하고, 본인의 연구 결과를 국내 혹은 해외 저널/학회에 투고하며 실적으로 만드는 과정에 대한 경험인 것 같습니다. 이 과정 속에서 좋은 실적을 내고 연구실 생활에도 만족하면 박사과정으로 진학합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자신과 맞지 않다면 석사학위까지만 마치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충분히 연구 능력이 뛰어난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뭐가 맞는 방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도 "연구만 잘하면 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다가도, 조직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기름도 칠하고 밀어주고 당겨줘야 움직이기 때문에, 1%에 속하는 "난 이것만 할 거고 이거 아니면 나 때려치울 거야! 나 잡지 마!" 하는 초능력자가 아니라면 조직에 대한 희생도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 할 부분 같기도 합니다.
박사학위
박사과정 동안에는 연구과제를 본인이 핸들링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지도 교수님과 정부과제나 민간기업의 산학과제에 신청하기 위한 제안서도 많이 작성하고 발표자료도 많이 작성합니다. 진정 연구를 하기 위한 운영과 행정, 그리고 연구실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들을 본인의 주도하에 진행한다고 보실 수 있습니다. 회사생활을 겸했던 제가 봤을 때 박사과정 학생들을 보면 정말 회사 내에서의 프로젝트 리더와 같은 업무들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들로 단련되었기 때문에, 회사에 빨리 적응하고 주어진 업무를 책임지고 해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석사의 경우 국내 저널이나 학회도 실적으로 인정해 주지만,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서는 보통 SCIE급 논문이나 저명한 국제학회에 논문 2편 정도 실어야 졸업심사를 받을 자격이 주어집니다. 국제적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투고 후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 또한 짧게는 2달 길게는 1년까지 걸리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논문 투고 후 1년 뒤에 결과가 Reject 되면 정말 충격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래서 논문 실적이 생각보다 안 나오는 경우 박사학위 취득까지 기간이 기준 4년에서 2~3년 추가되어 6~7년 차에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석사는 2년 안에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있고 중간에 포기해도 그렇게 큰 충격은 없습니다. 아직 나이가 젊기도 하고 석사과정을 접는 시점이 대략 1년 미만이기 때문에 시간적으로도 무리는 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박사는 한번 시작하면 집중해서 논문 실적을 만들어 내지 않는 이상, 학위 취득까지 기약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늘어질 수 있고 자신의 나이나 투자한 시간을 생각했을 때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박사를 중간에 포기할 수 있는 시기는 박사 3년 차로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박사과정 또한 박사 수료생과 박사 졸업생으로 구분됩니다. 수료생은 말 그대로 박사과정 등록 후 2년간 강의(코스웍 과정)를 들으며 졸업을 위한 행정적 학점 및 수료 기준을 채운 학생을 의미합니다. 학위 취득을 위한 연구 실적을 채운 상태는 아닙니다. 이런 기간은 취업 시 박사 수료생 신분으로 경력을 인정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중도 포기한다면 수료생 상태에서 취업의 문을 두드려 볼 수 있습니다.
기업에서의 학위 인정
일반적으로 석사 2년 과정은 경력 2년으로 인정되어 입사하면 바로 3년 차부터 시작합니다. 월급 또한 3년 차 기본부터 시작합니다. 박사의 경우 직장마다 차이는 있지만 석/박사 연구기간 전체를 경력으로 8년 정도 인정해서 과장/책임연구원부터 시작합니다. 경우에 따라 간혹 고교 2년 조기졸업, 학사 3년 조기졸업, 석 박통합 5년으로 20대 초중반에 책임연구원으로 오시는 분들도 계세요. 경력 인정 범위에 대해서는 각 회사 인사팀과의 면담을 통해 어느 정도 조율이 가능합니다.
석사는 학사 신입사원과 비슷한 수준의 업무로 시작합니다. 하지만 석사 경력 2년이 인정되어 3년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진급이 학사보다 2년 정도 더 빠릅니다. 승격이 빨라진다는 것은 보다 굵직한 업무들을 책임지고 맡아서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고 같은 해에 입사한 학사보다 더 높게 인정해준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현업에서 기대하는 눈높이가 학사와 동일하거나 그 보다 높게 본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신입사원들보다 더 열정적으로 일 해 주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박사로 입사하게 되면 어느 정도 회사 적응 기간을 주고 적응 기간 동안 기존의 과장/책임급 역량만큼 할 수 있는 것을 보인다면 새로운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연구분야와 100% 맞으면 좋겠지만, 민간기업의 경우 워낙 빠르게 변화하며 새로운 업무들도 많아서 자신의 전공분야와 완벽하게 맞추기는 어렵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완벽히 대처하고 치고 나갈 수 있는 만능 인력을 필요로 하는 한국 사회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박사로 입사하신 분들은 기존에 연구하던 경험들이 있어서 어떤 문제가 주어져도 논리적으로 해결하고 증명하고 결과물로 만드는 능력? 감? 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학위 최종 목표와 연구에 대한 열정
학위를 도전할 때, 취득 후 목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석사 과정에서 본인과 연구하는 분야 및 연구과정이 너무나 마음에 들고, 후배들을 가리키는 것을 즐길 수 있어서 직업을 교수로 선택했다면 박사학위는 필수입니다. 이 경우,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같은 분야를 연구하는 분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우수한 연구 실적을 많이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석사 때부터 정말 계속 실적을 만들고 저명한 저널/학회에 계속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계발을 위해 학위를 도전하시는 분들이라면, 자기 계발 이후의 목표를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솔직히 중년에 회사 다니며 가정을 꾸리며 석사학위를 취득하는 것은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력서에 "석사 졸업"이라는 한 줄 정도 더 들어가는 것일 뿐,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석사 과정 2년간 정말 "내가 이 나이 먹고 왜 시작했을까?" 하는 생각을 수 백번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박사학위 취득을 위한 중간 단계로 목표를 설정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져서 생각보다 스트레스받지 않고 수월하게 학위 취득까지 마치실 수 있습니다. 만약 연구개발 쪽으로 계속 업무를 한다면 박사학위는 인생에서 언제 어떻게 써먹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커리어상 도움은 됩니다. 아니, 도움이 된다기 보단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는 카드 하나를 획득했다? 정도로 해석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석사학위를 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중년에 가장의 입장에서 자기만족에서 끝나는 것과, 이를 활용할 수 있는 가치에 대한 투자로 생각하고 판단하면 좋을 것 같다는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대학원이라는 곳이 참 궁금했습니다. 밤샘하며 연구하시는 선배들 몇 분이 대학원을 가는 것을 보고 더욱 궁금했습니다. 제 성격상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궁금증과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이죠. 참고로 저희 회사는 학술연수제도가 있습니다. 신입사원 때 "일 열심히 하면 이런 기회들이 주어집니다." 하며 홍보하는 것에 매료되어서 신입사원 때부터 "이왕이면 기간이 긴 박사 학술연수를 꼭 가야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입사 후 2년 차에 개인적으로 산학대학원을 등록해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고, 10년간 근무한 끝에 기회를 얻어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리며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무엇이든 도전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학사 졸업 후 대학원을 진학하시는 분들이라면 내 목표가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시고, 중년의 나이에 자기 계발을 위한 도전이라면 자기만족이 아닌 돈과 시간의 투자라는 관점으로 내 인생에 어느 부분이 도움이 될지 잘 생각해 보셨으면 합니다. 석사과정을 자기만족을 위해 도전한다면 이왕이면 인생을 살면서 도움이 되는 경영, 부동산, 금융 등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지식을 함양할 수 있는 대학원도 꼭 한번 고려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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